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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예찬

찬밥 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대우’를 말할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찬밥 더운밥 가리냐’, ‘찬밥신세’등의 말이나 예부터 전해오는 여러 속담들 속에도 찬밥은 대수롭지 않거나 처치곤란한 대상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이런 분위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검색사이트에서 찬밥으로 검색해 보면 먹기는 싫고 버리긴 아까운 찬밥을 처리하기 위한 각종 요리법들이 줄줄이 뜬다.
찬밥피자니 찬밥계란부침이니.. 별 말도 안 되는 요리법들이 많기도 하다.
먹기 싫으면 그냥 먹지를 말아라. 그런 건 생활의 지혜가 아니라 궁상이다.

난 찬밥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우린 찬밥을 먹으면 복이 나가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찬밥을 멀리하고 뜨신 밥만 먹으며 자라왔다.
나도 어릴때 남은 찬밥을 어머니가 처리하는 광경을 많이 보아왔다.
난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난 찬밥이 먹고 싶었으니까.
난 찬밥이 좋으니 찬밥부터 먹겠다고 해도 굳이 말리며 내주지 않던 어머니.
자식에게 더운밥을 먹이려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 물론 안다.
하지만 난 정말로 찬밥이 맛있고 좋아서 먹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그게 잘못된 걸까?
어린 시절 찬밥을 먹고 싶어도 먹을 기회가 적었던 것이 불만 중에 하나였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유난히 뜨겁고 더운 음식을 좋아한다.
반찬도 뜨겁고 국도 뜨겁고 밥도 뜨겁다.
국도 펄펄 끓어 뜨거워죽겠는데 밥까지 뜨거우니 나는 싫더란 말이다.
특히 한여름에 이런 밥상을 마주하면 죽을 맛이다.
그래서 찬밥을 확보하지 못하던 난 차선책으로 뜨거운 밥에 찬물을 말아먹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어느 정도 열이 식으니까 말이다.
물론 멀쩡한 뜨거운 밥에 찬물을 말아먹는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찬밥과 함께 먹으면 이러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온통 뜨거운 반찬 속에 시원한 찬밥이 적절히 온도를 내려주어 먹기가 편한 것이다.

보통 찬밥의 적절한 용도로 꼽는 게 두 가지 있다.
볶음밥과 라면국물에 말아먹을 때.
볶음밥도 뜨거운 밥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찰진 더운밥을 바로 후라이팬에 볶아봐라. 덕지덕지 눌어붙어서 정말 맛없다.
꼬들꼬들하게 식은 찬밥으로 볶아야 볶음밥의 참맛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뜨거운 밥이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찬밥을 볶음밥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찬밥으로 볶아야 맛있기 때문에 찬밥을 쓰는 것이다.

라면에 찬밥.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궁합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살펴보면 역시 찬밥은 찬밥대우다.
찬밥을 그냥 먹기에는 차갑고 맛없으니까 라면국물에 말아서 따뜻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좀 유식한 사람들은 삼투압현상이니 뭐니 들먹거리며 찬밥을 써야 밥 안의 수분이 국물로 덜 흘러들어 가서 덜 싱거워져 맛있다는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만,
난 삼투압이니 그런 건 모른다.
그저 찬밥의 꼬들꼬들함과 위에서도 말했던 뜨거운 온도의 조절로 찬밥이 맛있을 뿐이다.

한국사람이라고 다 뜨거운 음식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찬밥 먹는다고 죽냐? 감기가 걸리냐?
아니면 옛날 어르신들 말처럼 정말 복이 나가냐?
그냥 먹고 싶으면 먹는 거다.
찬밥 더운밥은 그저 식성,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찬밥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려라.
찬밥을 빗댄 이런저런 안 좋은 표현도 삼가자.
찬밥을 좋아하고 즐겨 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끝으로..
예비, 현역 엄마아빠들에게 고한다.
애들이 찬밥 먹고 싶어 하면 먹게 해 줘라.
나처럼 한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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