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나홍진의 뻔뻔함을 2시간 반 동안 감상 할 수 있는 영화’
개인적으로 딱히 기대하거나 기다린 영화는 아니지만 나홍진 감독의 10년 만의 화제작인지라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개봉 이틀 차에 제목이 호프고 SF라는 것만 아는 상태로 관람했다.
초반에 분위기 잡고 정체불명의 대상을 추격하는 데까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30분 넘도록 쫓아가기만 하면서 ‘이건 좀 아닌데…’ 싶어질 즈음 다리 밑에서 거지 같은 할배를 만나면서 갑자기 코미디물로 바뀐다.
그것도 유치하고 안 웃기는 코미디.(하나 둘 셋 하면 들어가는 거야! 라는 대사 칠 때 속으로 이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두 글자 단어를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렇게 한참을 지루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거인(외계인이라고 하는데 누가 봐도 진격의 거인)이 등장하고 액션이 시작되는데, 솔직히 촬영은 좋았다. 속도감 있고 앵글도 다이나믹함.
하지만 CG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진격의 거인 실사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CG 작업을 쉽게 하려고 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벌건 대낮에 CG 액션을 펼친 감독의 깡은 높게 평가한다.
근데 보면 볼수록 이건 깡이 아니고 뻔뻔함이라는 생각이 커진다.
꽤 공들여 만든 80년대 분위기의 마을은 액션신 내내 스텔라 경찰차를 타고 달려도 끝이 없는 크기를 자랑하지만, 그 규모에 비해 주민은 이상하리만큼 적고, 파출소엔 경찰 3명이 전부다.
영화엔 이런 부분들이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많은데 개연성 부족을 넘어 기괴함마저 느껴진다.(할머니가 트럭 짐칸에서 탄창에 총알 채우는 장면에선 이 영화 장르를 판타지 액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슬로우 모션으로 정호연이 등장할 때는 갑자기 히어로물로 바뀌는데, 이 장면을 멋지다고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난 매우 오글거렸다.
시골 촌 동네 순경이 대체 운전과 총을 어찌 그리 잘 다루는지 알 수 없고 영화도 설명할 생각이 없다.
개연성 같은 거 개나 줘버리고 ‘그것이 뭐가 중헌디. 액션 쩔고 스타일리쉬하면 됐잖아’라며 나홍진이 뻔뻔하게 만든 영화인 거다.
이런 개연성이나 스토리의 부실함에 대해 말이 많아지자 나홍진이 어느 인터뷰에서 ‘난 배경이 지구라고 말한 적 없는데?’ 라는 말도 했다는데, 그럼 영화 속 파출소에 걸려있는 태극기는 평행 지구 속 한국인가? 뭐 어쨌건 나홍진은 다 알고도 그냥 이렇게 만든 거다.
많은 사람이 거장 나홍진 감독이 그랬을 리가 없다며 있지도 않은 의미 부여를 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감독이 만들지도 않은 설정을 갖다 붙이고 있는데, 나홍진은 그것마저도 예상하고 그냥 뻔뻔하게 이렇게 만든 거다.(특히 임현식의 똥 타령조차 의미 부여를 하고들 있다.)
특히 황당하고 어이없는 우뢰매 같은 엔딩에 대해서 ‘니들 하는 거 봐서, 대박 나면 속편 만들 수도 있고…’ 라고 말하는 거 보면 정말 뻔뻔하게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황정민이 마을을 배경으로 진격의 거인을 찍었다면 또 하나의 축을 담당하는 게 조인성 패거리의 숲속 액션인데, 여기도 가관이다.
애초에 숲의 지형과 나무들부터가 한국이 아니다. 그냥 누가 봐도 유럽 느낌이고, 심지어 ‘어촌 사람’들은 선글라스 끼고 외제 차 랜드로버를 타고 와서는 한술 더 떠서 백마를 타고 숲을 누빈다.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대놓고 이국적인 유럽 숲속에서 조인성 패거리가 총각김치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 장면이다.
상대로 등장하는 외계인도 전혀 달라서 황정민 쪽과 아예 다른 영화로 보이는 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인데, 역시 나홍진은 뻔뻔하게 밀어붙인다.
이쯤이면 설마 뭔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던 스토리나 개연성은 포기하게 되므로 그냥 액션이나 끝내주길 바라게 되는데, 마을 액션신과 마찬가지로 초반엔 괜찮은데 너무 같은 패턴을 길게 끌어서 늘어진다.
말 위에서 아무리 쏴도 떨어지지 않는 총알과 죽도록 맞아도 죽지 않는 조인성은 참겠는데 지루한 액션은 못 참겠다.
마지막은 드디어 황정민, 정호연 일행과 조인성이 합류해서 함께 벌이는 추격신인데, 여기도 정확히 똑같다.
외계인이 쫓아오면 총 쏴서 떨구고, 또 쫓아오면 또 쏴서 떨구고 이걸 너무 길게 반복한다.
모든 주요 액션 시퀀스의 최소 3분의 1, 솔직히 절반 가까이 줄였어도 영화 진행에 아무 지장 없고 오히려 액션이 지루하지 않고 더 타이트하게 느껴졌을 거다.
그랬으면 엔딩 롤에 특별 출연으로 이름만 올리고 싹 편집돼서 나오지도 못한 박영규 아저씨 얼굴이라도 봤을텐데…
그래도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영화 내내 미친 듯이 뛰는 황정민. 미션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인 줄 알았다.
두 번째는 조인성의 의상. 물론 패완얼이라 가능한 거긴 하지만.



